2024년 8월 18일, 1년 8개월간의 길고도 긴 군생활을 마치고 전역하게 되었다. 너무 오랫동안 군인으로 살았기 때문일까? 전역한 지 4~5일이 지났지만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다. 마치 아직도 부대로 복귀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도 점차 사회에서의 일상에 적응해가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나의 군생활을 돌아보고 스스로 평가해 본다면 90점 정도를 줄 수 있을 것 같다. 역시 후회는 없다. 물론 크고 작은 많은 실수를 했지만, 나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고 어떤 상황에서도 책임을 회피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나와의 약속이었던 "매일 최소 3시간 자기 계발에 투자하자"는 다짐을 단 하루도 어기지 않았다는 점에 스스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물론 힘들지 않았다고 말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나는 정말 운이 좋게도 좋은 사람들과 비교적 좋은 환경에서 근무했다. 부대에 부조리도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 복무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군대라는 곳 자체가 그리 좋은 환경일 수는 없다. 특히 이러한 환경에서 국방의 의무를 다하면서 동시에 내 목표와 꿈을 꾸준히 좇는다는 것은 훨씬 더 어려운 일이다.

 

사실 상병 말쯤에는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라를 지키고 있으니 조금은 쉬어도 된다"는 자기 합리화에 빠져, 쉬는 시간에 침대에 누워 휴대폰을 보면 군 생활이 더 빨리 지나갈까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지금이 내 꿈과 목표를 위해 굉장히 중요한 시기라고 여겼고, "조금 힘들어도 좀 더 버티자"라는 마음가짐으로 하루하루를 견디다 보니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약속을 지킬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성장통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군생활은 그런 시기였고,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1년 8개월간의 군생활을 돌아보며 이 긴 여정을 마무리하는 글을 작성해보고자 한다. 이 글은 아직 군 복무를 하지 않은 이들, 특히 필자처럼 개발자이거나 혹은 다른 꿈을 가진 사람들 중 군대가 자신의 목표에 장애물이 될까 우려하는 이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1. 어디에서나 배울 점은 있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공감하겠지만, 군대는 대한민국에서 부정적인 감정과 이미지의 총집합체처럼 여겨진다. 직접 겪어보니 그 말의 의미를 잘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군생활을 하면서 깨달은 점은 어디에서나 배우려는 자세만 있다면 배울 점이 충분히 많다는 것이다. 실제로 나는 군생활을 통해 개인적으로 크게 성장했다고 느끼고 있다. 이 점을 공유해보려고 한다.

 

불확실성에 대응하는 법

군대는 불확실성과 변수가 많은 곳이다. 일견 평범한 일상이 반복되는 듯하지만, 매번 새로운 상황이 발생한다. 계획했던 일을 시행하려 할 때 갑자기 작업에 차출되거나, 여유 시간에 갑자기 누군가 높으신 분이 방문한다던지 예측하고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이는 군대만의 일일까? 사실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늘 새로운 변수가 생기고, 이로 인해 계획이 틀어지는 일이 빈번히 일어난다. 이는 내가 계획을 잘못 세웠거나 게을러서가 아니라,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그러나 사회에서는 이러한 변수에 굉장히 큰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 같다.

 

군대는 이러한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을 배우는 데 정말 효과적인 곳이다. 불확실한 하루 속에서도 균형을 유지하고, 예상치 못한 변수에 유연하게 대응하며, 중요한 일에 집중하여 차질 없이 진행하는 법을 익힐 수 있다. 매일 최선을 다하는 자세를 배우는 데 있어 군대는 정말 적합한 공간이다.

 

필자는 변수가 생기고 계획이 틀어졌을 때 대응하기 위한 우선순위 체계를 만들고, 짧은 여유 시간에도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웠다. 또한 불안정한 일과 속에서도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안정적인 하루의 시작과 끝을 만들고자 했다. 이를 위해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모닝 루틴과 수면 원칙을 세워 스트레스를 줄이고 최적의 상태를 유지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이러한 방법들은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훈련과 자신에게 최적화된 패턴을 찾기 위한 실험과 반복이 필요한 작업이다.

 

군생활에서 얻은 이러한 경험들은 앞으로의 사회생활과 직장 생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실제로 전역한 지 4일 만에 이러한 방법들을 집에서도 적용하고 있다. 그 결과, 전역 후에도 큰 혼란 없이 빠르게 적응하며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일상을 보내고 있다.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관점

군대는 한국판 샐러드 볼이다. 전국의 다양한 사람들이 거의 유일하게 한데 어우러질 수 있는 공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들도 있겠지만, 필자는 이러한 점이 군대에서 얻을 수 있는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돌아보면 대학교에 입학하고 직업을 선택하기 시작할 때부터 내 주변 사람들이 점점 비슷한 부류로 채워져 갔다는 생각이 든다. 같은 대학, 같은 전공의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니 각자의 개성은 있지만, 큰 틀에서는 유사한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인간관계를 유지함에 있어서 편안하고 안정감을 주지만, 때로는 새로운 관점을 가지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반면 군대에서는 정말 놀라웠다. "세상에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구나!"라고 처음에는 매일 생각했다. 이 말이 때로는 부정적인 뉘앙스로 쓰이기도 했지만, 대부분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됐다.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었고, 이들과 대화하는 게 정말 재미있었다. 이는 단순히 지식수준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 아니었다. 일류 대학 출신이 아니거나 심지어 대학을 다니지 않고 바로 건설 현장에 뛰어든 사람일지라도, 저마다의 장점이 있고 배울 점이 정말 많았다.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세계가 정말 많았다. 이들과 대화를 나누며 그들의 생각과 관점을 배우면서 더 넓은 시야를 갖게 되었다. 개발자는 특히 사용자의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군생활에서의 이런 경험이 이러한 능력을 기르는 데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2. 나와의 약속을 끝까지 지키다

나는 비교적 늦은 시기에 군대에 입대했기 때문에 이 기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내 인생에 매우 중요했다. 하지만 군대는 불확실성이 높은 곳이고 어떤 변수가 생길지 예측하기 어려워, 입대를 앞두고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나는 어떤 상황과 환경에 처하더라도 "매일 최소 3시간 자기 계발에 투자하자"라는 단 하나의 약속을 반드시 지키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입대했다.

 

사실 이 약속을 지키기가 매우 쉽지 않았다. 초반에 시간이 부족할 때는 정말 매일 3시간씩 연등을 하면서 이 약속을 지켜야 했다. 휴가를 나갔을 때도 약속을 지키기 위해 최소 3시간씩은 작업 또는 공부를 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한 달, 일 년이 흘렀고 매일의 노력이 축적되어 1년 8개월 전의 나보다 훨씬 나은 사람이 되었다는 확실한 자신감이 생겼다.

 

독서에 매력에 빠지다.

군생활 동안 얻은 가장 큰 소득은 독서의 즐거움을 발견한 것이다. 초반에는 프로젝트나 코딩과 같은 작업을 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보니 독서 위주로 공부를 진행했다. 군생활의 반 정도는 독서를 하면서 보낸 것 같다. 사실 사회에 있을 때는 독서를 그다지 즐기지 않았지만, 군대에서 독서의 매력을 알게 되었고, 전역 후에도 내가 가장 즐기는 취미가 되었다. 지금은 아침 여유 시간에 리클라이너 의자에 앉아 독서를 하는 것이 하루 중 가장 즐거운 시간이 되었다.

 

나는 책을 다 읽으면 책 밑면에 몇 번째로 읽은 책인지 기록해두는데, 전역할 때 확인해 보니 총 47권을 완독 했다. 이는 내가 직접 구매하고 끝까지 읽은 책만 기록한 것이니 실제로는 더 많을 것이다. 60% 정도가 개발 관련 서적이었고, 나머지는 한동안 빠져있었던 심리학이나 뇌과학 분야의 책들이었다.

47권의 책들, 밑면에 넘버링이 되어있다.

책을 추천하는 이유는 인터넷 글(이 글처럼)이나 유튜브 영상에서는 담기 힘든 깊이 있는 내용들이 책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요즘 사람들은 책을 길고 지루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모든 지식의 원천은 글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평생 학습을 해야 하는 개발자에게 책을 읽고 지식을 습득하는 능력은 매우 중요하다. 책 읽는 방법에 관해서는 다른 포스팅을 남겼으니 관심 있으면 참고해 보자!

 

사실 책과 관련해서는 작은 비하인드가 있는데, 군대에서 독서에 빠지다 보니 나도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실제로 4~5개월간 원고를 준비하며 2 챕터 가량(80페이지 분량)을 완성하기도 했다. 그러나 책을 쓰면 쓸수록 내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아직 스스로에게도 선명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고, 더 많은 경험이 필요함을 자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는 반드시 내 생각을 담아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책을 쓰고 출판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라도 정말 열심히 살아야겠다.

 

프로젝트, 사이드 프로젝트

군 생활에서 흔히 공감할 수 있듯이, 시간이 지날수록 여유가 생기게 되는데, 나 역시 이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다행히도 '코드 스페이스'라는 훌륭한 서비스가 출시되어, 사이버지식정보방(사지방)에서도 프로젝트를 원활히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당시에는 개발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감사하며 행복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정말 환경이 토나온다. 사지방 컴은 1~2시간마다 재부팅되었고, 휴대폰 반출 직전이나 연등 시간에는 사람들이 몰려 대역폭이 떨어졌다. 그때마다 코드 스페이스는 정말 토할 정도로 느려져서 화가 났던 기억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런 환경에서 2,300여 개의 커밋을 했다니,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했나 싶다.

 

그래도 이런 환경 덕분에 지금 오히려 감사함을 느끼게 되어 고맙달까(?) 솔직히 이건 너무 럭키비키적인 사고인 것 같다. 우리 부대 사지방 환경이 유달리 좋지 않았기 때문이지, 대부분은 나보다 좋은 환경에서 작업할 수 있을 것이다.

 

어찌 되었든 개발을 할 수 있게 되었고, 군 기간 7개월 남짓 동안 메인 프로젝트 하나와 사이드 프로젝트 하나를 진행했다. 책을 읽으며 배운 새로운 시야와 관점을 적용하고 내 기술적 역량을 드러낼 수 있는 수준의 프로젝트를 원했고, 신기하게 이 시기에 훈련소 동기가 금융 관련 프로젝트를 제안했는데,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에 공감이 됐고 내가 충분히 기여할 수 있다고 판단해 개발 팀장으로 합류하게 되었다.

 

훈련소 동기는 개발자가 아닌 경제학과 출신이었는데, 완전한 비개발자가 기획자로 참여하여 프로젝트를 진행해본 경험은 처음이었다. 덕분에 소통과 고객 관점에서의 사고, 그리고 비즈니스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어서 매우 좋은 경험이었다.

 

 

1년 8개월을 마무리하며

모든 삶이 그렇듯 군 생활도 때론 즐겁기도 하고 힘들기도 했다. 위에서 말했 듯, 군대가 단순히 부정적인 경험만 있는 곳은 아니다. 오히려 배우려는 의지만 있다면 많이 성장할 수 도 있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많은 분들이 군대에 대한 걱정을 안고 있을 것이다. 시간과 자유가 통제되고,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성으로 가득 찬 일상, 그리고 자신의 꿈을 좇기에도 바쁜 시기에 2년이라는 시간을 "잃어버린다"는 답답함이 있을 것이다.

 

내가 유일하게 해줄 수 있는 말은 우리가 모든 환경과 상황을 통제할 순 없지만, 우리의 태도만큼은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좋은 부대에 배치될지, 어떤 사람들과 함께할지, 2년 후 자신의 모습이 어떨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런 불확실성이 두렵겠지만, 자신의 꿈을 향한 의지와 군 생활을 의미 있게 보내겠다는 마음가짐을 끝까지 유지한다면, 어떤 환경과 상황에 처하더라도 1년 6개월에서 9개월 후에는 분명 이전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사실 전역 후가 진정한 시작이다. 전역은 정말 기쁘지만, 시간이 지나면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것일 뿐 내가 스스로 이룬 것은 아니다. 아직 내가 가야 할 길이 매우 멀다고 생각한다. 이제 모든 자유와 책임이 주어졌으니, 정말 최선을 다해 후회 없이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