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작품은 <데미안>으로 유명한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다. 헤르만 헤세의 작품에 가장 큰 특징은 그의 작품에서 일관적으로 등장하는 ‘단일성(Einheit)’이다. 인간의 다양성, 갈등, 양면성이 ‘단일성’으로 귀결되는 그의 독특한 깨달음은 그의 작품에서 일관적으로 등장하며 핵심을 이룬다.

 

1919년에 출간된 <데미안>에서는 단일성의 인지를, 1922년에 출간된 <싯다르타>에게서는 단일성의 완성을, 이후 그의 후기 작품인 1943년에 출간된 <유리알 유희>에서는 단일성의 해체를 작품에 담았다. 이러한 변화는 자신과 세상의 갈등 속에서 평화를 찾고자 하는 헤세의 끊임없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단일성

그렇다면 단일성은 무엇일까? 내 나름의 해답을 적어보겠다. 세상의 모든 것은 다양성,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쉽게 인간은 나쁜 것도 생각할 수 있고, 좋은 것도 생각할 수 있다. 여기서 단일성이라는 것은 이러한 양면성이 다른 별개의 것이 아니라 하나의 단일한 존재라는 것이다. 즉 이러한 양면성을 느끼는 것은 불완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전한 것을 뜻하며 우리는 행위와 삶 속에서 고통과 기쁨, 번뇌와 행복을 느끼면서 이러한 단일성을 인지하고 완성해 나간다는 것이다.

 

헤세의 생각이 좋은 점은 세상과의 갈등, 불안,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선택하는 방법이 삶의 안정성을 추구하고, 현재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전진하며 방황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 또한 이에 공감한다. 끊임없이 고양되며 나아가는 과정을 통해 느끼는 적당한 불완전성, 불안, 두려움이 오히려 나에게 안정성을 준다.

 

 

영원한 방랑자

싯다르타와 우리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우리도 싯다르타와 같은 인생의 영원한 방랑자라는 것이다. 우리는 일회성인 인생 동안 끊임없이 고통과 기쁨을 반복하면서 삶을 완성해 나간다. 최근에는 이런 끊임없는 전진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도 많이 보인다. 이러한 삶에 대한 반발로 정체된 상태에서 강박적인 행복 집착이 사회적인 관념으로 퍼져있다. 여기서 말하는 행복이란 무엇인가? 고통 없이 행복만 누리는 것이 과연 인간에게 가능할까? 이러한 행복을 우리는 단순 쾌락과 구분할 수 있는가?

 

내 생각에 고통 없는 행복은 쾌락에 불과하다. 갈수록 우리는 나약해지는 것 같다. 갈수록 고통을 피하고 싶어 한다. SNS로 인한 수많은 감시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진정한 행복을 누리고 싶다면 전진해야 한다. 끊임없이 전진하면서 고통에 완전하게 괴로워하고 가끔 찾아오는 행복에 완전하게 기뻐해야 한다. 진정한 행복은 삶의 의미를 찾아 끊임없이 나아가며 자신의 삶을 책임지는 용감한 자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다.

 

싯다르타 표지